아마추어 사회학도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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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3.5시간 ‘잔업’도 합법이 된 세상 [아카이브] - 더스쿠프

연장근로 한도의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바뀌었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한도 위반 여부를 1일 8시간이 아닌 1주 40시간 초과근로시간으로 판단하는 ‘행정해석 변경’을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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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 침해의 우려가 있으니 고용노동부가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하면, 법이 가능하다고 해석을 내려놓은 사항을 공무원이 뭐 어쩔 수 있나? 정작 대법원 법관들도 하루 21시간 30분 근무하라 하면 기겁할텐데. 엉망진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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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무서운 풍경, 2070년 ‘사과 소멸’ 시나리오

1월2일 새해를 맞아 서울 청량리 경동시장에선 사과 판매가 한창이었다. 시장 내 점포에서는 제법 실한 부사를 3개에 1만원에 팔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작거나 예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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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이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지구온난화로 인해 2030년대에는 문경시를 포함한 경북지역은 사과를 재배하기 적합하지 않은 기후로 변모할 것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2070년이 되면 한반도에서 사과는 재배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문경시의 주된 산업은 관광과 농업이고, 농업 중에서도 감홍사과의 재배면적 확대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불과 10년 내에 문경이 사과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 된다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사회 시간에 <대구 = 사과와 섬유의 도시> 로 가르쳤다. 지금 대구는 사과로도 섬유로도 유명하지 않다. 문경사과도 감홍의 명성도 이제 곧 유명하지 않게 될까? 그때 문경시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기후위기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사과가 없으면 바나나를 먹으라고 하세요, 로 문제를 대충 퉁치자니 당장 사과에 지역경제의 미래를 걸고 있는 도시들이 있다. 사과를 너무 좋아하는 나도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 사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나는 단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실천할 뿐이다. 그걸로 뭔가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작은 실천조차 하지 않는다면 파국은 하루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군 시절이었던 2010~2011년 쯤의 얘기다.

 

당시 나는 전라도 모처의 어촌마을에서 전경으로 복무하고 있었고, 매일 세 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하루는 마을에서 조업 나갔다 온 어민에게 살아있는 게 한 냄비를 받았다.(물론 받으면 안되지만 인사삼아 종종 받곤 했다.)

나는 그 게로 꽃게탕을 끓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처음 끓여보지만 물살이를 넣고 끓이는 매운탕류 음식들 레시피가 다 비슷비슷하니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문제는 게를 죽이는 것이었다. 내가 당시 아는 지식으로는 게를 죽일 때는 뜨거운 김에 쐬어서 기절시킨 다음에 송곳으로 찔러서 손질하는 거였나, 뭐 그런 식이었다. 시골 어촌에서 군복무하는 군바리가 그런 장비나 경험이 있을 리가 없고 딱히 방법을 물어볼 데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양념장이 들어간 끓는 물에 넣고 냄비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충분히 게가 익었을 즈음 뚜껑을 열었다.

 

나는 후회했다. 게들의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끓는 물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죽었을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물론 나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간이라 게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꽃게탕을 맛있게 잘 먹었다. 하지만 이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먹는 동물이 단지 고기나 생선이 아니라 살아있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소와 닭과 돼지를 먹고 생선을 먹으며 이것이 한때 살아있고 고통을 느끼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고 나면 아마 한때 생명이었던 것을 입에 넣고 아무렇지도 않게 씹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엄마는 회를 뜨는 장면을 보지 못한다. 그걸 보고 나면 생선의 고통에 공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예전에는 지역에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 공무원들을 동원해 살처분을 했다.(지금은 아니다. 용역을 준다. 물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시켜 저지르는 것일 뿐이다.) 신규직원 시절 처음 모셨던 계장님은 종종 살처분에 동원되었던 경험을 얘기해 주곤 했다. 우리들은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은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라 단지 고기일 뿐이라고, 축산의 생산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니다. 수많은 공무원들이 살처분에 동원된 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살처분에 나가 죽은 소들을 확인사살하기 위해 찔러본다면 이것이 단지 축산물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감각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앞서 말했듯이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간인지 어떤지 지금도 고기와 생선을 즐겨 먹는다. 고기를 끊어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지만 나흘 만에 그만두었다. 당시엔 군복무 중이라 주어진 식사를 먹어야 했고, 고기를 먹지 않으니 먹을 것이 없더라. 물론 지금이라면 잘 실천할 수 있겠지만 나는 완전한 채식은 하지 않는다. 단지 고기의 비중을 줄이고 채식 메뉴의 비중을 좀 늘린 것이 내가 하는 실천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환경적 문제(축산은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끼친다)와 건강의 문제(고기는 고단백이지만 고지방도 동반해 섭취 방법에 따라 운동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를 포함한 선택이다.

 

나는 음식을 남기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고기를 남기는 것을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재화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갖는다. 내게 고기를 남기는 것은 한때 살아있던 그들이 교환가치만을 가질 뿐 사용가치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매일 동물을 죽여 먹는 죄를 짓는다. 그 죄에 더해 죽여 놓고 먹지도 않고 버리는 더 큰 죄는 피하려고 한다.

 

나는 내 죄를 직시하면서도 매일 무감각하게 새로운 죄를 짓는다. 내가 생각하는 사악함은 무감각에 본질이 있다.  나의 사악함과 모순됨이 대략 이러하다. 

https://www.google.com/amp/s/www.joongang.co.kr/amparticle/25072417

'소음 못 참겠다' 대학생, 청소 노동자 집회 경찰에 고소

학내에서 열리는 집회 소음을 견디지 못한 대학생이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최근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A씨로부터 학내 집회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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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집회로 인한 소음으로 불편을 겪은 학생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 문제제기의 방향은 노동자 측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측을 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이 충돌하는 상황. 학생들은 노동자들이 노동권 침해를 감수하고 조용히 있으면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학습권을 누리겠지만, 노동자를 희생해 얻은 평화는 이미 평화라고 부를 수 없으며, 그것을 평화로 알고 누리는 것은 반노조주의적 사고방식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측에게 화살이 향해야 한다.

http://weirdhat.net/blog/archives/4434

 

심의 눈물

기분이 좀 그렇다. 공적인 자리에서만 수십차례는 얘기한 것 같다. 선거제도 바꾸는 게 다가 아니다. 선거제도 바꾸는 것 플러스 뭐가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뭐가 먼저 있지 않으면 선거제도 바꿔봐야 소용이 없다는 거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므로 제도를 바꾸면 누가 수혜를 얻는지 뻔히 아는데, 자신의 대의를 설득할 준비도 안 돼있고 그런 시도도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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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엘리트 정치는 양당제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번 선거가 보여줬다. 지역주의가 아니다(지역주의가 없다는 게 아니다). 정치적 맥락이 다른 두 개의 지역이 있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양당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새삼 드러난 거다. 양당제의 일원이 되는 길을 거부하겠다면, 남은 길은 엘리트 정치의 바깥에서 대안을 만드는 것 뿐이다. 엘리트를 이기는 것은 대중의 힘 뿐이고, 그걸 하나로 모으는 것은 어찌됐든 대의명분이다."

- 링크 본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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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 대해 공감가지 않는 글만 읽다가 처음으로 공감가는 글을 발견해 짧은 메모를 달아둔다. 어떤 정당이 꼭 집권하지 못하더라도 이 세상에 자유와 평등을 확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십년 전의 무상급식 논쟁처럼 거대 정당이 내놓지 못하는 더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고, 목소리를 확대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의 진보정당이란, 코로나를 무기로 착취와 탄압을 정당화하려는 자본가(때로는 그 사용자 집단은 대한민국 정부가 될 수도 있겠지. 과거 노동자를 위한 법률상담소를 운영했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추진하는 '자율적인' 공무원 임금 반납과 연가보상비 삭감을 보라.)에 맞서 노동계급의 편에서 착취를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온 세상이 코로나로 비명을 지른다. 그 중에서도 역병은 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덮친다. 누군가는 퇴근을 못 하고 누군가는 월급이 줄어들고 누군가는 직업이 없어진다. 진보정당도 목소리를 높여보자.

 

이십대 초반에 읽었던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든다.

요즘 핫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와 오연호의 대담을 묶은 책이다.

 

글쎄. 금수저는 진보하면 안 되냐고?

 

프리드리히 엥겔스라는 사람이 있다. 칼 마르크스의 평생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던 엥겔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가 계급'이었다. <엥겔스 평전>을 읽든, 엥겔스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든, 자본가로서의 계급적 위치와 지향하는 삶에 대한 간극을 두고 외적 내적 갈등을 보여주는 장면이 항상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백년이 지난 지금 엥겔스를 두고 자본가는 노동계급의 해방을 외칠 수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엥겔스는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했기 때문이다. 진보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조국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다. 온갖 의혹에도 빡세게 버티는 걸 보면 검찰과의 싸움도 빡세게 버틸 것 같긴 하다. 그냥. 진보라는 단어를 보니 괜히 한 마디 하고 싶어서 끼적거린다.

 

ps 1. 후보자께서는 본인이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라 하셨던데. 차라리 기계적 유물론자였다면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 대해서 한번 더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뻘생각도 드네.

 

ps 2. 이건 진짜 뻘소린데, 스티븐 제라드가 만약 제라드가 아니라 훔바훔바였다면, 이라는 얘기가 웃음을 줬던 것처럼 만약 조국이 아니라 훔바훔바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